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페준타 제국 (문단 편집) === [[룸 술탄국]]과의 전쟁 === 알렉시오스 1세는 자신이 죽을 때,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사위 안드로니코스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다. 새롭게 제위에 오른 [[안드로니코스 1세 기도스]](1222~1235)는 치세 초기부터 중대한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. 시노페에 주둔한 룸 술탄국 함대가 크리미아 지역의 중요한 항구인 솔다이아[* 현 [[크림 반도]]의 수다크(Судак).]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는데[* 솔다이아는 1224년 룸 술탄국의 요새가 건설되어 몇 년간 룸 술탄국의 영토로 영유되다가 1230년 즈음하여 베네치아의 공격을 받고 점령되었다. 이후 1365년에는 제노바가 점령하여 제노바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1475년 크림반도를 공격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1783년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.] 이는 이전 알렉시오스 1세가 동의한 조약을 위반한 것이었다. 안드로니코스 1세는 즉각 함대를 소집하여 시노페로 돌아온 룸의 함대를 기습하여 크리미아 지역에서 약탈한 재물들을 모두 되찾아왔으나 룸 술탄국의 분노를 사 대대적인 침공을 받게 된다. 그러나 계속된 폭풍으로 룸 술탄국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, 술탄은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며 트라페준타 제국에게 협상을 제안한다. 이 과정에서 트라페준타 제국은 술탄을 패장이 아닌 한 국가의 제왕으로 제대로 대우해주었고 이에 감동한 술탄은 이전 조약에서 제국에게 부과된 모든 의무를 면제해주는 한편 붙잡은 포로들을 모두 석방시키고 술탄의 숙영지로 쓰였던 성 에우게니우스 [[수도원]]에 헌금을 약속하고 매 해마다 아랍의 명마를 선물해주겠다 하며 제국과 술탄국 사이의 분쟁은 평화롭게 종식되었다. 그러나 급변하는 소아시아의 정세는 트라페준타 제국의 평화를 오래 지속시켜주지 않았다. [[칭기즈 칸]]에 패배해 쫓겨온 [[호라즘]]의 마지막 샤, [[잘랄 웃 딘 밍부르누]]는 [[조지아 왕국]]을 대패시키고 이들을 신종시켰고 뒤이어 트라페준타 제국에 자신과 룸 술탄국 사이에서 편을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받는다. 안드로니코스 1세는 고심 끝에 잘랄의 뛰어난 수완을 믿고 그와 동맹을 맺었으나 1230년, 잘랄은 [[아클라트 전투]]에서 룸 술탄국 군대에 대패하고 이듬해 들어서 룸 술탄국에 고용된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. 안드로니코스 1세의 도박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고 트라페준타의 배신 행각에 분개한 룸 술탄국은 이전 술탄이 면제해준 모든 의무를 부활시켰다. 뒤이어 몽골의 침공으로 [[조지아 왕국]]의 바그라투니 왕실은 멸망은 피했으나 약소국으로 전락해버렸고 트라페준타 제국과 조지아 왕국은 나란히 지역 소국으로 근근히 생존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. 안드로니코스 1세는 1235년 사망하였고 알렉시오스 1세의 장남이었던 [[요안니스 1세(트라페준타 제국)|요안니스 1세]] 메가스 콤니노스 악수코스(1235~1238)가 즉위했으나 3년 만에 [[폴로]] 경기를 즐기던 중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. 차기 황위를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요안니스의 아들이었던 요안니키오스는 강제로 [[수도자]]가 되고, 요안니스의 동생인 마누일 1세 메가스 콤니노스(1238~1263)가 황위에 오르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